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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Christo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21:15-19)


베드로 다시보기

이 성경 본문은 본문은 예수님과 베드로가 나눈 대화입니다. 그리고 이 대화는 요한복음의 제일 마지막 장에 위치해있습니다. 제일 마지막에 있다는 것은 그 앞에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있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만 몇 가지 찻아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께 나아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1:42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고 이름을 지어주십니다.

6장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의 떡이요 생명의 말씀임을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6:68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13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자신이 배신당하실 것을 예고하십니다. 베드로가 묻습니다.

13:36-37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18장에서 예수께서 잡히시고 대제사장의 집뜰에서 베드로는 불을 쬐고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18:25-28)

몇 구절 안 찾아 보았지만 우리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베드로의 말 중에 반 이상을 찾아본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까지 포함하면 목욕시켜달라고 떼쓰는 이야기와 예수님과의 만찬에서 배신하는 자가 누구냐를 묻는 내용을 빼고는 베드로의 말은 다 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몇마디 베드로의 말들은 굳은 다짐과 결심을 나타냅니다. “내가 주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고, 굳은 결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목숨을 걸만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위기의 상황에서 베드로의 굳은 다짐과 결심, 그의 열정은 공수표에 불과 했습니다. 그는 여지없이 무너졌고, 너도 그 제자가 아니냐는 말에 부인합니다. 베드로를 고발하는 자들은 꽤 확실한 증거를 목격자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네가 귀를 자를 종 말고의 친척이라서 그 자리에서 너를 봤는데 네가 그 제자가 맞다”는 것입니다. 그정도 확실한 증거면 “내가 사실 그 사람이 맞습니다” 정도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네요!!”정도는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예수님을 목숨을 다해 따르겠다고 다짐할 때 만큼이나 확고하게 부인합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여종 앞에서 저주하며 맹세하여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의 모습은 완전한 실패자의 모습입니다.



베드로를 다시 부르시는 예수님

그렇게 철저하게 실패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시 나타나십니다. 누가복음 5장에 처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했던 때처럼, 베드로와 제자들이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한 그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그물을 내리라 하십니다. 그리고 잡은 떡과 생선으로 함께 아침식사를 합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예수님께서 친히 차려주시는 영광스러운 아침식사입니다.

그리고 아침식사를 하신 후에 베드로를 부르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21:15)

앞에서 베드로의 행적을 추적할 때도 이렇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호칭한 적이 있으십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만나시고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실 때입니다. 1:42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주목해 볼 것은 이 표현이 성경에 단 두 번 나오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그 두 번이 바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시면서 이름을 지어주실 때,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다시 찾아오신 이 현장입니다. 처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셨듯이 예수님께서는 실패하고 배반한 베드로를 다시 부르시러 오신 것입니다.

베드로를 부르시고는 예수님께서 질문을 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하시니..."(요21:15) 이 질문은 우리말을 보면 두가지 의미가운데서 혼동될 소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1. “베드로야 네가 이 사람들이(다른 제자들이)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두 번째는 2. “베드로야 네가 이 사람들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쪽으로 이 구절을 읽어오셨나요?? 필자는 처음에 1번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의문이 생겼죠. 두가지 해석이 가능하구나~~!! 영어성경을 보면 조금 명확해 집니다.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 직역하면 “네가 이것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가 됩니다. 결국 정답은 2번입니다. “네가 이 사람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헬라어 성경은 보다 분명합니다. “이 사람들 보다”에 대해서 지시대명사 “투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격, 곧 목적어를 표시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남성형으로 읽을수도 있고 중성형으로 볼수도 있습니다. 남성형으로 본다면 “이 사람들보다”가 되는 것이고 중성으로 본다면 “이것들 보다”가 되는 것이죠.

만약 “이것들”의 의미라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 자리에 보여지던 것들, 조금 전에 탔던 배, 고기 잡던 그물, 그리고 잡힌 고기들, 먹던 떡과 고기... 이런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것들은 어부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재산일 수도 있고, 베드로의 생계일 수도 있고, 베드로의 꿈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질문을 조금 깊이 들여다 보면 이런 질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야... 너의 가족들, 동료 제자들, 또 너의 배, 너의 그물, 너의 재산, 너의 생계, 너의 꿈... 그 모든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세 번의 물으심

그런데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세 번씩이나 질문하십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베드로는 동일하게 대답합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세 번이나 예수님께서 물으시니 베드로의 대답에 조금 변화가 생깁니다.
“근심하여 이르되”(17)
이전의 모습을 볼 때, 예수님을 목숨 다해 따르겠다고 호통칠 때,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아니라, 도통 근심과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베드로가 근심하며 말합니다. 베드로는 실패한 자신의 모습에서 자신의 장담이 얼마나 쓸모 없는 것인지 알았기 때문에 더 근심하며, 그리고 자신을 의심해보며 조심스럽게 말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이러한 신앙고백을 세 번째 고백의 앞에 둡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 숨길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아시듯이 나는 ‘모든 사람이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만은 그러지 않겠다고’ ‘목숨 까지도 다해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여지없이 실패한 초라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주님 단 한가지 분명히 말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너무 능력이 없고 초라해 보일 때, 때론 나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또 우리가 실패할 때 예수님은
"너 왜 실패했느냐?, 왜 배반했느냐? 왜 의지가 그것밖에 안되느냐?"
"나를 위해서 죽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네 모습은 어디갔느냐?" 고 묻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물으시는 것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능력이 있고 힘이 있어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정말 그분을 사랑하느냐 이기 때문이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예수님께서 물으실 때, “내가 주님을 그 무엇보다 사랑합니다.” 라고 대답하신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기에, 그리고 더욱 주님과 친밀해 지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더 사랑하기에 힘쓰십시오?? 더 사랑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더 알아야 합니다. 사랑은 상대를 알고 싶게 하고, 아는 만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사랑임을 기억하십쇼. 그리고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그 이상이 없는 것입니다. .